top of page

볼리드, 혜성의 이름을 빌려 누군가의 희망과 꿈이 되어주고 싶었던 사내. 스톤필드 에비뉴 어딘가에서 처음 그를 만났더라면 누군가는 그 코드네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살고 싶었다. 그것이 다시 돌아온 후 그가 선택한 속죄의 방법 중 하나였고, 여전히 변함 없는 저 자신의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신념이나, 죄책감에서 우러나오는 속죄와 전혀 상관없는 욕심이 있다는 것을.

 

머나먼 하늘에서 타인을 위해 반짝이다 조용히 사라지는 별이 아닌, 오롯이 누군가의 쉼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가끔은 함께 있는 시간을 잠시 멈추어 이대로 종일 밀어를 속삭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가벼운 입맞춤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면서도,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딘가가 이상하리만치 가득 차오름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살랑이는 엷은 커튼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에 새하얗게 반짝이는 백금색의 머리칼을, 따스한 마멀레이드 색 그림자가 진 얼굴에 드리운 미소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눈매와 입술을, 하염없이 넋을 놓고 바라보다 간질거려오는 기분에 바보처럼 웃어버린 것은 또 언제부터였던가.

 

그것은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어느 날 돌아보니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차근차근 고개를 들어 올리는 그것의 존재에 의식할수록, 평소와도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느껴지는 떨림이 저만의 것이 아님을 바라게 되었고 벅차오르는 기분 또한 서로 같기를 바랐다. 흘러넘치는 애틋한 감정이 동기화되어 저에게 파도처럼 밀려왔을 때, 그것이 쓸고 간 가슴 어드메가 한없이 간지러워 행복해하는 자신을 그가 알아주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네 애정이 기껍다. 행복하다. 그러니 조금 더 이대로 있고 싶다고 느끼는 욕심과도 같은 감정의 이름이 사랑임을 알았을 때, 사내는 울고 애원했다. 이 감정이 단지 하룻밤에서 피어오르는 짧은 열기가 아니기를 간절히도 바라는 마음으로.

그 마음은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넘칠만큼이나 버거우나 사랑한다고 전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고 무거웠다. 그러한 감정에 대해서는 백지와도 같은 상대에게 행여나 자신의 욕심으로 인한 그릇된 감정을 알리는 것이, 혹은 저의 섣부른 말에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저 자신이 할 일은 그저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차마 말하지 못하고 기나긴 밤을 지새우며 다만 저를 가장 가까운 곳에 둬달라는 말 대신 여느 때처럼 안아 달라 속삭였다.

 

 

 

이후로 말하자면, 늘 기회를 엿보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다. 무슨 기회냐 묻거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기회가 되겠다. 호시탐탐 노려오며 하루하루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행여나 이 마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 네가 부담을 느끼지는 않게. 혹은 저와 함께 있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게. 누군가는 그것을 쓸데없는 걱정이라 하겠으나, 처음 마주한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저 자신이 조금 서툴렀기에. 이른바 긴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더 멋진 식사를 준비하고, 그럴 때마다 테이블에 양초를 켜볼까 고민했다. 아냐, 이건 진부하지 않나? 와인이라도 한잔하며 조심스레 말해볼까? 아냐, 이건 너무 술에 취해 한 고백 같지 않나. 긴장감과 함께 밀어닥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몇 번이고 입술만 달싹이며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문득 함께 놀이공원에 갈 일이 생긴 것에 속으로 갖은 생각을 다 한 것을 너는 알까.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가본다는 그 못지않게 한껏 들뜬 이유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 때문도, 스릴 있는 놀이기구 때문도 아니었다.

 

 

오늘이다, 오늘 꼭 말해야지.

오늘 꼭 네게, 나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