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짙은 어둠이 깔려가는 저녁노을 아래서 소년은 발치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향해 돌멩이를 찼다.

 

곧 졸업과 함께 그라운드 데뷔가 찾아올 시기가 되었다. 마지막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 로빈 카펜터는 길어진 그림자처럼 어느덧 훌쩍 자라났고, 동그랬던 젖살이 빠져 풋풋한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프롬파티를 기대하며 그날 입을 옷을 정하러 다니느라 들떠있을 터였다. 허나 소년만큼은 썩 기쁘지 않았다.

 

'졸업하고도 리암을 봐야하네….'

 

리암. 그 소년은 로빈 카펜터에게 있어 한때 친구이자, 선의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같은 나이, 같은 포지션에 같은 반 옆자리인 그는 친구가 제법 많아 보였고 맑게 웃는 얼굴을 하고 다녔다. 저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그를, 한때 동경했었다. 소년은 그에게 종종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다주거나 숙제를 대신해 주는 대가로 우정어린 포옹을 받았고, 그는 소년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생긴 기분을 한 스푼씩 맛보게 해주었다. 그게 제법 달콤했더랬다. 그런 리암에게 질 나쁜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이 행하는 일탈이란 이름의 폭력이 저를 향하는 날이 있더라도, 그것이 권력과 힘인 줄로만 알고 아주 잠깐 선망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그 후로는 하루하루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때때로 입는 부상마저도 훈장처럼 여겨질 만큼 기분이 좋았지만, 이제는 야구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떨어져만 가는 기분만큼 컨디션도, 야구 성적도 고개를 숙여갔다.

 

소년은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한때는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프로 야구 선수가 되고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가정에 기부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고 싶었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하는 고인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제 책임이라 여겼다. 소년의 꿈은 어느새인가 그렇게 책임이 되었고, 소년은 그것을 탓했다. 조금만 더 가볍게 생각하고,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질걸. 그랬더라면 저에게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소울 메이트라던지, 베스트 프렌드 같은 것이 생기진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이리저리 치이고 홀로 겉돌며 그 어느 톱니바퀴 사이에도 끼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텐데. 제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탓할 이가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기곤 했다.

 

문득 그것이 한없이 속상했던 소년은 고여있던 눈물을 떨어트렸다. 식어가는 아스팔트 위로 몇 방울의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덕에 아무도 제 눈물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인 한편, 아무도 제 눈물을 눈치채주지 못하는 것이 조금 외로웠다. 짧은 노을이 졌으니 밤은 이제야 시작인데, 소년은 지표 하나 없이 긴 긴 밤을 헤맬 뿐이었다.

아이의 반짝이던 꿈은 떨어지는 유성처럼 그렇게 깎이고 또 깎여나가 어느덧 사라지고만, 밤이었다.

bottom of page